국민 먹거리 원가를 흔든 담합, 공정위가 크게 물었다

장사해보면 안다. 원재료 값이 한 번 흔들리면 끝이 아니다. 빵집은 빵집대로, 분식집은 분식집대로, 라면이나 면류를 쓰는 식당은 또 그 나름대로 바로 원가 압박을 받는다. 그런 밀가루를 두고 국내 주요 제분사들이 장기간 담합을 했다는 건 그냥 기업들끼리의 편법이 아니라, 결국 소비자 지갑과 자영업자 원가를 동시에 건드린 일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사조동아원,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등 7개 제분사가 밀가루 판매가격과 물량을 짬짜미한 혐의에 대해 총 6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까지 내렸다. 담합 사건 사상 역대 최대 규모라고 한다. 이 정도면 공정위도 이제는 그냥 경고 수준으로는 안 된다고 본 셈이다.

사실 이런 사건은 숫자만 보면 멀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밀가루는 빵, 라면, 국수, 과자, 외식 메뉴까지 다 연결돼 있다. 원가가 올라가면 식당은 메뉴 가격을 올리고 싶어도 손님 눈치 때문에 못 올리는 경우가 많다. 결국 남는 건 사장 몫이다. 그래서 이런 담합은 업계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물가 전체를 건드리는 민생 문제로 봐야 한다.

6년 동안 이어진 짬짜미, 시장 점유율이 워낙 높았다

이번 사건이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이들 7개사가 국내 B2B 밀가루 시장의 87.7%, 다른 발표 기준으로는 88%에 이르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실상 시장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과점 구조였다는 얘기다. 이런 구조에서는 한두 곳이 눈짓만 해도 가격이 움직이기 쉽다. 장사판에서 독점 비슷하게 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현장에선 이미 다 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담합은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6년간 이어졌다. 그 사이 총 24차례에 걸쳐 가격과 물량이 조정됐고, 대표자급과 실무자급 회합도 55회나 가졌다고 한다. 윗선에서 큰 틀을 맞추고 아래에서 세부를 맞추는 방식이니, 이건 우연한 가격 조정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움직인 셈이다.

담합 대상도 넓었다. 농심, 팔도, 풀무원 같은 대형 수요처를 상대로는 공급가격과 물량을 맞췄고, 중소형 수요처나 대리점 등 전 거래처를 상대로도 공급가격을 조정했다. 결국 누가 사든, 어디에 팔든, 가격이 자연스럽게 정해진 게 아니라 서로 눈치 보며 밀어 올린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항목 내용
담합 기간 2019년 11월~2025년 10월
담합 횟수 총 24차례
회의 횟수 총 55회
국내 B2B 시장 점유율 87.7%~88%
과징금 6710억4500만원

원가가 오를 땐 빨리, 내릴 땐 늦게… 장사판에서 제일 얄미운 방식이다

밀가루 가격 구조를 보면 더 속이 보인다. 원재료인 원맥은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데, 원맥 시세가 오른 2020년부터 2022년 사이에는 그 상승분을 재빨리 밀가루 가격에 반영했다고 한다. 반대로 2023년 이후 원가가 내려갈 때는 하락분 반영을 최대한 늦췄다. 이건 현장에서 늘 보는 패턴이다. 오를 때는 번개처럼, 내릴 때는 거북이처럼 움직이는 식이다.

공정위가 밝힌 바에 따르면 담합이 시작된 2019년 12월과 비교해 2022년 9월 밀가루 판매가격은 제분사별로 약 38%에서 최대 74%까지 올랐다. 숫자만 봐도 부담이 크다. 밀가루 자체가 이 정도로 오르면, 그걸 쓰는 빵집·분식집·식품업체는 버틸 수가 없다. 결국 제품값을 올리거나, 내용량을 줄이거나, 마진을 깎아야 한다.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셋 다 아픈 선택이다.

특히 공정위는 담합에 가담한 상위 3개사와 하위 3개사 모두 공동행위 이전보다 영업이익률이 크게 개선됐다고 봤다. 이 말은 결국 누군가는 원가 압박을 감당하는 동안, 제분사들은 오히려 수익을 챙겼다는 뜻이다. 이런 구조를 보면 “시장 자율”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울 좋은지 실감하게 된다.

📊 담합 전후 가격 상승 폭

최소 상승폭 ■■■■■■■■■■■■■■ 38%
최대 상승폭 ■■■■■■■■■■■■■■■■■■■■■■■■■■■■■■■■■ 74%

보조금 받으면서도 담합했다는 대목, 이건 더 씁쓸하다

물가 안정 정책과 관련해서 더 눈여겨볼 부분도 있다.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한 기간, 즉 2022년 6월부터 2023년 2월 사이에 이들 7개사는 471억원을 지급받고도 담합을 이어갔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국민 세금이 들어간 지원을 받으면서, 그 시기에 가격을 더 안정시키기는커녕 담합을 지속했다면 반응이 좋을 리 없다.

이런 장면은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 특히 씁쓸하다. 세금으로 지원해도 시장이 제멋대로 움직이면 결국 피해는 소비자와 영세업자에게 돌아온다. 정부가 물가 잡겠다고 돈을 넣어도, 공급 쪽에서 가격을 맞춰버리면 정책 효과는 반쯤 날아간다. 그래서 공정위가 이번에 강하게 나간 건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식으로 못 하게 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도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료품 가격 담합에 대해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사실 이런 말이 말로만 끝나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과징금 규모가 워낙 크고, 가격재결정 명령까지 붙었다는 점에서 예전보다 훨씬 직접적인 압박이 들어간 셈이다.

“앞으로도 밀가루와 같이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료품의 가격 등을 놓고 이뤄지는 담합에 대한 감시를 보다 강화하고 법 위반이 확인되면 엄중히 제재해 나갈 계획이다.”

가격재결정 명령, 20년 만에 다시 꺼낸 이유가 있다

이번 조치에서 눈에 띄는 건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이다.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을 담합 이전 수준으로 다시 계산하라는 뜻인데, 공정위가 이 명령을 부과한 건 역대 세 번째라고 한다. 지난 2006년 밀가루 담합 때는 이 명령 이후 약 5%의 가격 인하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이번에도 비슷한 효과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공정위는 또 향후 3년간 밀가루 가격 변경 현황을 연 2회 서면 보고하도록 했다. 이런 보고 의무는 그냥 서류 한 장 더 쓰는 수준이 아니다. 가격을 마음대로 흔들지 못하게 감시망을 걸어두겠다는 뜻이다. 영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늘 느낀다. 규제는 귀찮아 보여도, 막상 시장이 망가지는 걸 막는 역할을 할 때가 있다. 특히 몇몇 큰 회사가 시장을 쥐고 있는 업종일수록 더 그렇다.

이번 사건은 검찰 수사와도 맞물려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2020년 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의 가격 변동 여부와 폭, 시기 등을 합의한 혐의로 제분 7사 중 6개 법인과 임직원 14명을 기소했다. 공정위가 조사 중인데 검찰이 먼저 고발 요청을 하는 이례적인 상황도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사안이 무겁다고 본 것이다.

자영업자 입장에선 결국 소비자 가격으로 돌아온다

식품 원가와 외식 물가는 따로 놀지 않는다. 밀가루 값이 오르면 빵값만 오르는 게 아니다. 라면, 국수, 만두, 튀김류, 간식류까지 줄줄이 영향을 받는다. 식당은 원가가 올라가도 바로 메뉴판을 바꾸기 어렵다. 손님 발길이 끊길까 봐 참고 버티는 기간이 길다. 그러다 한계가 오면 결국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그 부담은 소비자에게 넘어간다. 이게 현실이다.

그래서 이번 담합 적발은 단순히 기업 몇 곳을 벌주는 사건으로 보면 안 된다. 시장점유율이 높은 기업들이 6년 동안 가격과 물량을 맞췄고, 그 결과 국민 먹거리 원가가 왜곡됐다. 공정위가 역대 최대 과징금을 부과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담합으로 벌어들인 이익보다 훨씬 무거운 제재가 따라야 다시는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

장사는 원래 박리다매든, 고마진이든 다 버티는 싸움이다. 그런데 원재료를 쥔 쪽이 뒤에서 가격을 맞춰버리면, 장사하는 사람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조치는 늦었지만 필요한 조치로 보인다. 공정한 경쟁이 무너진 시장에서는 결국 소비자도, 자영업자도 같이 손해를 본다. 그걸 이번 사건이 다시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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